행복하고 따뜻한 육상교통 365


제3장 위기와 변화|1992~2003

4. 관광사업의 재정비 및 안보관광사업 개시

관광사업의 위기

중앙고속은 1983년 20대로 국내 관광사업을 시작해 1991년 48대까지 증차, 운영했다. 계절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고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고 전 사원의 영업 요원화를 꾀해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관광업체의 난립과 해외여행에 대한 선호 등으로 국내 관광객의 수요가 급격히 감소했다.
1990년대에 들어 고도의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관광여건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해외여행객이 매년 증가하는 가운데 정부의 과소비 억제정책이 추진되면서 국내 여행이 오히려 타격을 입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중앙고속은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관광버스 차고지 건설을 위해 서울시 강서구 공항동 인근 부지 5,140㎡를 매입, 그해 9월 공사에 착수했다. 당시 관광버스 차고지는 성수동 정비공장 내 위치했는데, 부지가 협소해 이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1993년 우리나라는 신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된 사정 바람과 금융실명제 실시 등으로 사회가 격심한 변화를 겪었다. 여행 분위기는 여전히 위축됐고, 공공기관이나 기업들의 주요행사가 잇달아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업체 간 과당경쟁으로 인한 덤핑영업도 더욱 심해졌다. 중앙고속은 그해 2월 관광 차고지 공사가 완료되자 성수동에서 강서구 공항동으로 이전하고, 철도 승차권 위탁판매 및 엑스포 관람권 판매 등을 수주해 수입증대를 꾀했다. 그러나 그해 관광수입은 적자를 기록하고 말았다. 이듬해도 정부는 과소비 억제정책을 이어갔고, 기관 및 업체의 행사수요가 증가하기는커녕 국민의 위축된 심리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관광업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되면서 신규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경쟁을 부추겼고, 업체들이 난립하면서 덤핑영업이 성행했다. 이로 인해 관광수입이 전년대비 0.6%가 감소해 적자 폭이 더욱 커졌다.
1995년 중앙고속은 국내 관광영업의 흑자 전환을 위해 관광버스 4대를 감차, 모두 44대로 영업을 시작했다. 국내 관광영업과 해외 관광영업의 연계성을 고려해 국내관광부와 해외관광부를 관광사업본부로 통합했으며, 지방에서 상경하는 이용객들이 대부분 열차를 이용하면서 이용객이 큰 폭으로 감소하자 반포영업소도 폐쇄했다. 조직은 축소했지만 대신 전 직원이 영업활동에 참여했다. 덕분에 전년대비 9.2% 신장한 관광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다만, 아쉽게도 흑자로 전환하지는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여전히 사업 여건이 호전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1997년 들어 국내 관광영업 여건은 극도로 악화됐다. 그해 말에는 육군본부가 신병 교육 면회제도를 ‘교육수료 시 면회제도’에서 ‘부대 배치 후 휴가’로 변경12)함에 따라 신병 면회객 수송사업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면회객 수송 등 관련 업무를 수행하던 잠실영업소와 대우영업소도 국내 항공권 발매 위주로 전환해야 했다. 국내 관광사업의 주 수입원이던 면회객 운송사업의 철수는 가뜩이나 힘든 상황을 더욱 어렵게 했다. 설상가상 그해 말 IMF 외환위기까지 더해지면서 국내 관광사업은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12). 신병면회제는 시행과 폐지를 거듭했다. 최초로 시행된 것은 1951년으로 이후 1959년 9월까지 실시되다가 면회 관련 비리가 드러나면서 중단됐다. 1988년 2월 부활했으나 1998년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과 정예장병 육성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다시 폐지됐다.

중앙고속관광본부 준공(1993. 2. 23)

관광사업의 위기

-국내 관광영업과 해외 관광영업의 연계성을 고려해 국내관광부와 해외관광부를 관광사업본부로 통합했으며, 지방에서 상경하는 이용객들이 대부분 열차를 이용하면서 이용객이 큰 폭으로 감소하자 반포영업소도 폐쇄했다

안보관광사업 추진 배경

- 중앙고속은 재향군인회의 산하 기업으로서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참전용사들을 지원하고, 갈수록 희박해져 가는 국민의 안보의식 고취하는 데 안보관광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외국인 판문점 관광사업 개시

- 1995년 10월 재향군인회가 안보사업을 건의했고, 1996년 7월 유엔사의 승인과 8월 국방부의 결정을 거쳐 중앙고속이 외국인 판문점 관광사업에 추가로 참여하게 되면서 독점운영 체제에서 탈피하게 됐다.

육군사관학교 견학사업 추진

-육군사관학교 관광사업은 1996년 4월 한국관광공사와 육군사관학교가 학교를 내국인과 외국인에게 개방하기로 합의하면서 초석이 놓였다. 우리나라에서 사관학교가 일반에 개방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제3땅굴 관광사업 본격 전개

- 1998년 8월 관할부대와 제3땅굴 견학 및 방문절차에 대해 합의했다. 합의사항은 1일 방문 허용 인원 1,200명(20명 이상 단체 편성 버스 이용),..

애기봉 관광사업의 시작과 끝

- 애기봉 관광은 1989년 4월부터 재향군인회의 자회사 중 하나인 통일관광에서 운영해왔다. 그러던 중 1997년 4월 중앙고속에서 인수해 휴게소는 임대 운영하고, 애기봉에 망원경 36대와 관람경 18대를 설치해 사업을 개시했다.

해외 관광사업의 위축

-중앙고속은 1988년 해외 관광사업을 시작했다. 주로 개인과 단체의 해외 관광알선과 항공권 대매, 여권 및 비자 발급 대행 등 해외 송출영업(Out Bound) 위주였다.

관광사업의 재정비

- 관광사업은 1997년 상반기 안보관광을 신규사업으로 추진하면서 활기를 되찾는 듯했으나 시기가 좋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