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따뜻한 육상교통 365


제3장 위기와 변화|1992~2003

2. 대중교통의 활성화 및 고급화 추진

우등고속버스의 운행 개시

1990년대 들어 고속버스 운송회사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민의 교통수단은 버스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승용차의 증가에 따른 마이카시대의 도래와 도시철도망 확충에 따라 버스를 하급 교통수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는 승용차의 운행속도, 편리성, 안락성에 뒤지고 철도보다 정시성, 신속성이 떨어진다는 점에 기인했다. 기차(새마을호)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시간대가 다양한 장점이 있기는 했으나, 사양산업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미래 전망이 불투명했다. 문제는 한 기업이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여의치 않다는 점이었다. 고속버스 운송기업들로서는 주어진 환경에서 대응책을 마련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 대안으로 추진한 것이 우등고속버스1)의 도입이었다. 소득 수준의 향상에 따라 고급화되는 사회상과 고객 선호도를 반영한 일종의 영업 전략으로 우등고속버스를 투입했다.
우등고속은 일반고속의 상위 등급으로, 우등버스와 일반버스의 가장 큰 차이는 좌석 수와 가격이었다. 일반고속버스는 보통 전체 45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2칸씩 쌍을 이루고 있었다. 이에 반해 우등고속버스는 전체 28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좌석과 좌석 사이의 폭이 넓었으며 승객 편의를 위해 종아리 받침과 발 받침을 설치했다. 또 비디오, 무선이동 전화기, 헤드폰, 모포 등을 지급했다. 운임은 당연히 우등고속버스가 더 높았다.

1)우등고속버스는 대형승합자동차로서 일반고속의 상위 등급의 버스이다. 좌석이 29석 이하이면서 시외 우등고속 또는 시외 우등직행, 시외 일반직행으로 인가받았다. 차량 외부에는 노선 인가 조건에 따라 우등고속, 우등직행, 우등일반의 표시를 하도록 했다.

서울 ~ 광주 노선 우등고속버스 개통(1992. 10. 23)


국내에서는 1992년 10월 교통부가 27개 노선 262대의 우등고속버스를 인가함에 따라 정식으로 운행되기 시작했다. 운행 개시 2달 만에 평균 이용률이 80%에 달하는 등 승객 반응이 뜨거웠다. 이에 교통부는 그해 말, 65개 노선 308대 고속버스를 우등고속버스로 추가 전환하도록 인가했다. 이로써 1993년 3월까지 모두 92개 노선에 570대의 우등고속버스가 운행하게 됐다. 새로 인가된 우등고속버스 운행노선은 서울에서 이리, 군산, 정읍, 원주, 창원, 삼척, 온양, 천안, 강진, 영광, 충주노선과 동서울~광주, 동서울~부산, 부산~광주, 대구~부산, 춘천~부산, 춘천~광주 등이었다. 중앙고속이 우등고속버스를 최초로 운행한 것은 1992년 7월 14일이었다. 갈수록 승객이 감소하자 자구책으로서 1차로 서울~청주, 대전, 대구, 부산, 전주, 광주, 마산, 진주, 강릉 등 9개 노선에 41대를 우등고속버스로 전환해 운행했다. 운임은 현행요금의 50% 할증을 했다.

우등고속버스 운행 개통(1992. 10. 23)


우등고속버스의 운행 개시

-1990년대 들어 고속버스 운송회사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민의 교통수단은 버스라는 인식이 강했다.

우등고속버스로의 전환 가속화

- 1992년 우등고속버스의운행을 개시하면서 고객의 선호도가 높아지자 차량의 대·폐차를 더욱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그해도입한 신차는 모두 77대에 달했는데 우등고속버스가 41대, 일반고속버스가 31대, 관광버스가 5대였다.

경부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제 시행

- 1994년 여름, 피서철에 앞서 서울 양재에서 신탄진에 이르는 134㎞ 구간에서 버스전용차로를 시범·운영하기에 이르렀다.그리고 1994년 12월 31일부로 경부고속도로의버스전용차로제가 시행됐다.

고속도로 건설과 수익성 노선 개발

- 1992년 3월 중앙고속은 호남, 남부 교통편의 제공과 유동인구 증가에 따라 서울~강진노선을 3개회사(중앙고속, 광주고속,천일고속)가 상행분배,하행경쟁의 방법으로 운행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