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따뜻한 육상교통 365


제1장 창업과 성장|1971~1980

3. 코리아그레이하운드 인수하고 업계 2위로 도약하다

다시 찾아온 도약의 기회

1977년 중앙고속은 주식회사 코리아그레이하운드(Korea Greyhound Ltd.)의 외국인 지분 매각 정보를 입수했다.
코리아그레이하운드는 미국의 재계서열 27위인 그레이하운드코퍼레이션의 자회사 그레이하운드라인즈잉크가 국내에 설립한 한미 합작투자법인이다. 창업 15년이 되는 해에 미국인 주식지분을 한국인에게 양도하는 조건이었다.
이 회사는 우리나라 고속버스사업의 여명기라 할 수 있는 1970년 1월에 미국에서 고속버스 40대를 들여와 서울~대전 간 운행을 시작으로 고속버스 운수사업에 진출했다. 창업한 그해 경부고속도로 노선인 서울~부산, 서울~대구, 대전~대구 간 운행을 개시하며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이후 운행노선을 확대하며 사세를 키워나갔다. 1971년 서울~대전 간 일반고속을 시작으로 서울~원주, 서울~여주, 여주~원주 간 운행을 개시했으며, 이듬해 서울~전주 간 노선까지 확보했다. 이로써 경부선, 호남선, 영동선 등 주요 고속도로를 누비는 국내 굴지의 대형고속버스 회사로 성장했다.

서울 ~ 부산, 서울 ~ 대전, 서울 ~ 대구 노선을 알리는 코리아그레이하운드 신문광고(조선일보, 1970. 7. 9)

1973년에는 서울시 광진구 화양동에 정비공장을 준공하고 정비사업을 본격화했다. 외형성장과 함께 내실도 기해 미국의 경영방식과 선진기술을 도입, 이를 국내 실정에 맞춰 정착시키는 등 업계 발전에도 이바지했다. 특히 회사를 상징하는 이층버스와 견종 그레이하운드를 이미지화한 심벌마크는 당시 고속버스의 대명사로 여겨질 만큼 인기가 높았다. 그러던 중 설립 7년 만인 1977년에 이르러 코리아그레이하운드는 자체 사정으로 미국인지분 전량을 양도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창업 15년이 되는 해 지분을 넘기기로 한 조건이 한참이나 앞당겨진 셈이었다. 당시 회사 규모는 종업원 783명(본사 76명, 영업소 236명, 승무사원 138명, 안내원 143명, 정비 기술사원 190명), 고속버스 차량 85대(고속 80대, 일반 5대)였으며 서울, 부산, 광주, 대전에 터미널과 정비공장을 각각 운영하고 있었다. 이는 광주고속에 이어 업계 2위의 규모였다. 재무구조는 자산 36억 2,100만 원, 자본 15억 6,200만 원, 부채 20억 5,800만 원이었으며, 영업이익 7억 7,800만 원, 순이익 6억 1,200만 원으로 양호했다. 그해 6월에 실시한 자산평가액은 35~40억 원이었다.
당시 중앙고속은 종업원 533명, 버스 차량 67대를 보유하고 호남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구마고속도로 노선을 운행하고 있었다. 매년 성장하고 있었으나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당면과제인 △고속버스 100대 이상 확충 △우리나라 대동맥 노선인 경부고속도로 운행면허 조기 획득 △구마선 개통에 따른 연계노선의 확보 △터미널 설치 △정비공장 이전 및 시설 확충 등을 해결해야 했다.
만약 코리아그레이하운드를 인수한다면, 당면과제를 일시에 해결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업을 승계 받아 명실공히 업계 상위권으로 도약할 좋은 기회였다. 여력도 있었다. 창업 후 꾸준히 성장하고 있어 재무상태가 양호했고, 거래은행으로부터 우량업체에 선정되는 등 건전한 기업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었다. 회사의 성장을 견인할 동력이 분명한데 인수·합병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각다시 찾아온 도약의 기회

- 코리아그레이하운드는 미국의 재개서열 27위인 그레이하운드코퍼레이션의 자회사 그레이하운드라인즈잉크가 국내에 설립한 한미 합작투자법인이다.

코리아그레이하운드의 인수·합병 추진

- 3월 11일에는 인수회사와 피인수 회사 소속의 노사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노사회의를 개최해 전원고용 승계와 동일한 고용조건에 대해 합의했다.

실질적인 합병작업과 조직개편

- 1978년 3월 14일 중앙고속 대표이사로 하여금 코리아그레이하운드의 대표이사를 겸직하도록 하고 실질적인 합병작업에 돌입했다.

전국 노선망 구축 및 노선 재정비

- 중앙고속은 코리아그레이 하운드의 인수·합병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맞았다.

안전조직의 확대와 한층 강화된 안전활동

- 1979년 안전조직을 확대,더욱 강화했다. 먼저 그해 3월 업무부 내 안전과를 안전관리부로 승격하고 ...

여객사업과 화물영업의 강화

- 화물영업도 강화했다. 화물운송업은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장거리 다량화물 수송이 대세였으며,주로 철도를 통해 운송됐다.

정비사업의 본격 전개

- 중앙고속 정비사업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1978년 코리아그레이하운드를 인수하면서였다.

업계 2위 대형고속버스 회사의 위상

- 중앙고속은 창립 첫해인 1971년 총자산은 4억 3,300만 원, 영업수입은 2억2,500만 원, 순이익은 100만 원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