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따뜻한 육상교통 365


제1장 창업과 성장|1971~1980

1. 창업의 든든한 뿌리를 놓다

재향군인회 산하 기업으로 탄생하게 된 배경

중앙고속은 대한민국재향군인회를 모기업으로 탄생했다. 그 배경을 이해하려면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해 1월 당시 입법 기능을 수행하고 있던 국가재건최고회의는 <군인사법(법률 제1006호)>을 제정, 공포했다. 군인의 인사행정 기준을 정한 법률로 11장으로 나누어진 전문 66조와 부칙,그리고 시행령과 시행규칙으로 이루어졌다. 그중 제8조에 현역군인의 정년 기준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계급별로 연령정년,근로정년, 계급정년을 두고 그 가운데 가장 먼저 해당할 경우 전역하도록 했다. 이어 1963년 1월에는 <군인연금법(법률 제1260호)>을 제정했다. 이 법은 20년 이상 복무 후 퇴직한 군인에게 연급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군인이 전역한 후기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연금을 지급한다는 법 제정 취지에 모두가 환영했다. 다만, 일부 조항이 문제가 됐다. 제16조(복무기간 계산) 제7항에 따르면 군 복무기간 산정 시 소급 가능한 시점을 정부수립일(1948년 8월 15일)로 제한하기로 했는데, 이로 인해 정부 수립 이전 복무한 경력이 제외됐다. 또 전투에 종사한 기간을 3배로 계산하는 특례적 조항을 두었는데, 이때 ‘전투종사’의정의가 논란이 됐다. 같은 법 시행령 제27조에서 ‘전투종사’를 ‘작전명령에 의한 적과의 전투행위에 참여한 자’로 정의하고 있어 실제로 적과 생명을 걸고 전투를 벌인 다수의 창군 유공자들이 혜택을 입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더욱이 <군인사법>과 <군인연금법> 이 제정되기 전 병력 감축이나 인사 정체 해소를 위해 부득이 전역한 이들을 위한 혜택은 커녕 대책조차 없었다. 국가재정이 빈약했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조치였으나 연금 혜택에서 배제된 전역자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과 비애는 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전역 군인들의 친목 도모와 권익 보호, 복리 증진을 목적으로 대한민국재향군인회(이하 재향군인회)가 조직되어 있었으나 전역 군인을 지원할 수 있는 형편이 못됐다. 재향군인회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사단법인으로 출범했다. 1961년 5월 10일 <재향군인회법> 을 제정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했으나 엿새 뒤 5·16군사정변이 발발하면서 국가재건회의 포고령에 따라 다른 많은 사회단체와 더불어 해체되고 말았다. 다행히 그해 12월 부활하기는 했지만 조직 정비와 자립기반 구축이 시급한 실정이라 퇴역군인을 지원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창립총회(1952)

이때 박정희 대통령이 나섰다. 박 대통령은 재향군인회가 퇴역군인들을 지원하기에 자립기반이 약하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고, 더불어 <군인사법>과 <군인연금법> 이 제정됐다고는 하나 법의 사각지대가 있음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대통령은 법과 규정에 따라 연금 혜택을 받지 못한 채 빈손으로 귀향한 창군 원로를 비롯한 전역 군인들의 실생활을 파악하고 이들을 도울 방법을 모색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대통령의 배려로 1967년 3월 국군창건과 한국전쟁 중 공적이 현저한 장성으로서 예편 후연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예비역 장성을 지원할 목적으로 상무재단이 설립됐다.
문제는 재원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재향군인회의 자립기반을 구축하고 전역 군인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을 조달하려면 꾸준히 수익을 창출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목적 아래 재향군인회의 수익 창출 수단으로 검토한 사업이 고속버스 운수사업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중앙고속이 재향군인회의 산하 기업으로 탄생하게 된 배경이자 설립목적이었다.

재향군인회 산하 기업으로 탄생하게 된 배경

- 중앙고속은 대한민국재 향군인회를 모기업으로 탄생했다. 그 배경을 이해 하려면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속도로 시대의 개막과 고속버스 운수회사의 설립 필요성

-박정희 대통령은 당선된 후 약속대로 고속도로 건설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최우선으로 2대 경제권역의 중심지인 서울과부산을 연결해 경제발전의 발판으로 삼기로 하고,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1971)이진행되는 기간 내에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기로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사업 재가

- 중앙고속의 설립이 처음논의된 것은 1970년 10월 교통부장관은 박정희 대통령이 재향군인의 복지를 위해 준공 예정인 호남고속도로의 노선운행을 담당할 고속버스회사를 설립하도록 지시했음을 알렸다.

회사의 지향점 경영이념과 근무 신조 사훈 제정

- ‘경영이념’은 회사가 추구하는 지향점이자 지속 성장을 위한 정신적 동력이며, ‘사훈’은 구성원들의 구심점이자 근무 신조로서그 의미가 매우 중요했다.회사 설립이 가시화될 때부터 경영이념과 사훈을두고 고민해 왔고...

회사의 지향점 경영이념과 근무 신조 사훈 제정

- ‘경영이념’은 회사가 추구하는 지향점이자 지속 성장을 위한 정신적 동력이며,

기업 이미지 통합(CI) 작업 추진

- 회사의 마크는 사명인 중앙고속의 ‘中(가운데)’과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및 사통팔달을 담은 문양, 그리고 여기에 고속 운수회사가 반드시 갖춰야 할 안전(Safe), 속도(Speed), ...

회사 최초의 편제

- 중앙고속 최초의 조직은 3부(총무부, 영업부, 기술부), 5과(총무과, 경리과, 영업과, 안전관리과, 정비과), 5개 영업소(서울, 대전, 전주, 군산, 이리) 체제였다.

회사 최초의 노선 서울~이리 간 운행 개시

- 중앙고속은 1970년 11월 21일 교통부로부터 호남고속도로 30대 운행 대수의 예비인가를 받고 곧바로 고속버스 차량도입을 검토했다. 몇 가지 모델 중 후소(FUSO) B905형 고속버스를 들여오기로 했다.

6개 노선 7개 영업소로 확대

- 그해 8월 16일과 27일 군산과 전주에 차례로 지방영업소를 개소하고, 서울~군산노선과 서울~전주노선의 운행을 개시했다. 이어 9월 30일에는 대전영업소를 개소하고 대전~군산 간 운행을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