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위기와 변화|1992~2003
1. 사명의 변경과 내실경영 추진
사명 변경과 기구개편
1990년대 초 우리나라 경제는 1980년대부터 이어진 호황으로 고도성장을 이어갔다. 1990년부터 1995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평균 성장률이 10.5%에 육박할 정도로 높은 성장세였다. 무역 규모가 크게 확대되어 세계 10위권에 진입했고 1인당 GDP가 1만 달러를 넘어선 것도 바로 1990년대였다. 빠른 경제성장으로 국민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었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소비규모도 부쩍 커졌다. 반면 신자유주의의 확대에 따른 시장개방 압력, 도시와 농촌 혹은 공업과 농업 간 불균형, 계층간 격차 등 해결해야 할 문제점도 대두됐다.
이처럼 국내 경제가 호황기를 누리던 1992년 1월, 중앙고속은 기존의 ‘중앙고속운수주식회사’에서 ‘주식회사 중앙고속’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회사명에 ‘운수’가 들어있어 사업 범위가 한정됨에 따라 안보관광사업을 비롯해 신규사업을 포괄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또 ‘운수주식회사’라는 명칭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사용되던 것으로 진부한 이미지를 줄뿐 아니라 시내버스와 시외버스, 화물회사, 택시회사들이 획일적으로 사용하고 있어 타사와의 차별성이 떨어졌다. 이런 이유로 동종업계 9개 사가 이미 사명을 변경한 터였다. 따라서 현대적인 기업 이미지와 추진사업을 포괄적으로 담을 수 있도록 사명을 변경했다. 또회사가 발행한 주식의 총수를 40만 주에서 80만 주로 증자했다.
사명 변경을 계기로 중앙고속은 그해 교통부로부터 우등고속버스 운행을 인가받아 우선 41대(주요 도시 주·야간 운행)의 우등고속버스를 구입, 일반고속버스의 운행노선을 대체함으로써 우등고속버스 시대를 열었다.
고도성장하던 국내 경제는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성장세가 둔화하기 시작했다. 외형 위주의 성장에 치중해온 기업들의 재무구조가 취약해지면서 부실 문제가 불거졌고, 기업들의 생산 활동이 나날이 활기를 잃어갔다. 이로 인해 국내 수요가 위축됐고, 불황의 그늘이 서서히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중앙고속은 1994년 12월 감량경영을 위한 조직의 경량화와 외래정비사업의 확대 및 노무관리 기능 강화를 위해 기구 및 편제를 조정했다. 이때 전무제를 신설하고 정비사업본부를 고속사업본부에 통합했다. 또 총무부와 경리부를 통합해 관리부로, 국내관광부와 해외관광부를 통합해 관광사업부로, 안전부의 안전과와 지도과를 통합해 안전실로, 강남사업소와 화물사업소를 통합해 반포사업소로 정비했다. 대신 노무업무를 전담할 노무부를 신설했다.
1995년에도 조직개편을 이어갔다. 책임경영과 본부장제의 확립, 외래정비사업의 강화 및 안전관리 기능 강화, 그리고 감사 기능의 분리 독립으로 경영체제를 개선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때 전무제도를 폐지하고 영업본부를 고속사업본부와 정비사업본부로 분리했다. 또 안전실은 안전교육부, 노무부는 총무부, 관리부는 경리부, 비상계획실은 비상계획부로 각각 개칭하고 감사실을 분리해 독립 운영했다.
창립 제21주년 기념식(1992. 7. 28)
사명 변경과 기구개편
-국내 경제가 호황기를 누리던 1992년 1월, 중앙고속은 기존의 ‘중앙고속운수주식회사’에서 ‘주식회사 중앙고속’으로 사명을변경했다. 회사명에 ‘운수’가 들어있어 사업 범위가 한정됨에 따라 안보관광사업을 비롯해 신규사업을 포괄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종합전산화 5개년 계획수립 및 실행
- 종합전산화 5개년 계획은 1993년 매표사업소장비 도입, 1994년 고속영업관리 시스템 도입 및고속업무 재개발, 1995년 본사 및 정비관리 시스템 도입, 1996년 안보관광 장비와 고속시스템보강, 1997년 본사의 인사, 급여 및 예산, 회계관리 재개발, 1998년 경영정보(MIS) 개발을 목표로했다.
노사관계 제1위 실현을 위한 노력
- 1993년 8월 노사협의를 통해 종업원의 복리후생차원에서 장학금 지급규정을 개정했다. 이때 수혜대상을 종전의 ‘취학자녀2명에 대해 고정 수혜’하기로 한 것을 ‘전 자녀 중2명의 범위 내에서 수혜’하는 것으로 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