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따뜻한 육상교통 365


제1장 창업과 성장|1971~1980

3. 코리아그레이하운드 인수하고 업계 2위로 도약하다

전국 노선망 구축 및 노선 재정비

중앙고속은 코리아그레이하운드의 인수·합병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맞았다. 운행노선의 경우 서울~대전, 서울~대구, 서울~부산, 서울~진주, 서울~광주, 대전~대구, 대전~광주, 부산~광주, 부산~대구, 부산~진주, 광주~진주노선 등을 인계받아 전국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기업의 반열에 올랐다. 특히 염원하던 경부고속도로 운행권을 확보해 두 배의 기쁨을 안겼다. 고속버스 차량도 크게 늘어 미국 지엠씨(GMC)제품인 PD 4104형 고속버스 40대와 PD 4501형 40대, 그리고 국내 지엠코리아 제품인 GMK 5대 등 모두 85대를 인수함에 따라 고속버스 보유 차량은 모두 175대로 늘어났다. 1978년 7월 6일 중앙고속은 운행노선의 조정에 나섰다. 먼저 대구, 부산, 광주, 진주 등 4개 영업소를 개소하고 이들 노선의 운행을 강화했다. 반면 기존 노선 중 수익성이 낮은 원주~강릉, 원주~삼척(직행고속버스, 일반고속버스)노선을 폐쇄했다. 또 이천, 삼척, 묵호, 속초 등 4개 영업소의 경우 동부고속과의 분배영업 방식으로 전환했다. 노선 정비 결과 그해 말 운행노선은 24개 노선으로 재정비됐다. 그해 영동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의 발착점이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율산터미널로 바뀐 것도 변화 중 하나였다. 인수·합병의 기쁨도 잠시, 1979년 고속버스업계는 또 한 번의 시련을 맞았다. 그해 5월 제2차 석유파동이 발발하면서 기업환경이 열악해졌다. 경기침체로 소비심리가 위축됐고 고속버스 이용 승객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게다가 유류가격이 뛰면서 고속버스 운수업체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중앙고속도 예외는 아니었다. 창업 초기부터 대한석유공사에서 유류를 구매해 오다 코리아그레이하운드의 인수·합병 후 유류 공급원을 호남정유로 이원화하여 유류 공급에 어려움은 없었으나 유류비 상승은 불가피했다. 운행비용도 늘었다. 당시 정부는 단거리 이용 차량의 통행을 억제하고 물가상승으로 인한 고속도로 유지관리비의 증가에 대처하기 위해 인터체인지 사용료 징수제도를 신설해 대당 100원씩 부과하도록 했다. 통행료의 거리체감제도 승용차의 경우 폐지하고 버스와 화물차의 경우 차등 조정했다.
중앙고속은 긴축재정에 돌입했다. 먼저 1979년 7월 본사를 정비공장인 광진구 화양동 167-18번지로 이전했다. 이에 앞서 6월 7일 악화된 영업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노선을 재정비해 영업실적이 저조한 부산~광주노선을 폐지했다. 또 교통부의 개선 명령에 따라 서울~이천, 속초, 묵호, 삼척노선을 폐지하고 이천, 속초, 묵호, 삼척영업소를 폐쇄했다.

서울~전주 노선 운행 개시(1972. 5. 14)


그해 10월 전 차종의 고속도로 통행료가 28% 인상됐으며 인터체인지 사용료도 대당 200원으로 올랐다. 남해고속도로 부산~마산 간 확장공사비와 유지관리비의 재원을 확보하고 단거리 이용 차량의 고속도로 통행을 억제하기 위한 정부의 조치였다.
이처럼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영환경 속에서도 중앙고속은 1980년 1월 인가대수 부족분에 대한 차량 6대를 2차로 들여왔다. 그해 5월에는 광주민주화운동의 발발로 광주 기점 운행을 열흘 동안 중단했으며, 6월에는 이용 승객 수가 대폭 감소한 마산노선을 폐지하고 마산영업소의 운영을 중단했다. 이어 7월에는 서울노선 일부를 동양고속에 할애했으며, 청주터미널 내에 청주영업소를 개설하고 서울~청주 간 운행을 시작했다.
특히 그해 정부가 고속버스의 차령을 11년으로 법제화함에 따라 보유한 차량의 반 이상을 1982년까지 대·폐차해야 하는 큰 부담을 안게 됐다. 중앙고속은 이에 차량도입 계획을 수립, 단거리 운행버스는 국내 생산 버스로 대차하고 원거리 운행차량은 단계적으로 대차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1차로 현대자동차에서 생산한 RB-635형 버스 29대를 발주해 연말까지 20대를 인수, PD 4104형 차량과 대차했다.

2층 버스와 함께 코리아그레이하운드의 대표 버스(PD 4104)

이로써 중앙고속은 1980년 기준으로 19개 노선 12개 영업소(서울, 대전, 대구, 부산, 군산, 전주, 정읍, 광주, 진주, 청주, 원주, 강릉)로 재정비됐다. 잇단 노선의 폐지에도 불구하고 면허 대수의 증가 및 차령 법제화에 따른 도입으로 보유 차량 대수가 203대로 늘었다. 당시 종업원 수는 1,322명으로, 영업소 직원 51명을 감축한 데 반해 승무사원과 안내원은 각각 303명과 293명으로 전년도보다 소폭 증원했다.
이처럼 중앙고속은 계속되는 유가 인상과 부대비용 증가 등 악화된 기업환경을 맞아 비수익 노선과 해당 영업소를 폐지하고 각 부문의 비용 절감을 꾀하는 등 경영 내실화를 도모했다. 더불어 그 와중에도 회사의 근간이자 자산인 차량도입을 꾸준히 추진하며 내일을 대비했다.

노선인가 현황(대수 및 횟수는 인가 당시 기준)
노선명 인가일 개통 대수 횟수 거리(km) 소요시 비고
서울~이리 1971. 07. 29 1971. 07. 29 3 55 249.8 3:20 1972. 4. 30 폐지
서울~이리 1971. 08. 17 1971. 08. 17 5 64 249.8 3:40
대전~군산 1971. 08. 17 1971. 08. 17 4 9 128.5 2:00 1973. 11. 14 폐지
서울~전주 1971. 08. 26 1971. 08. 27 12 19 232.1 3:10
서울~원주 1971. 11. 18 1971. 12. 01 6 18 121.6 1:50
서울~이천 1971. 11. 18 1971. 12. 23 2(1) 10 85.0 1:15 1979. 6. 7 폐지
대전~전주 1971. 08. 26 1972. 03. 18 4(3) 6.6 96.9 1:30
서울~정읍 1973. 10. 27 1973. 11. 15 10 13 265.7 3:50
서울~강릉 1975. 05. 29 1975. 10. 15 13 17 232.4 4:00
서울~묵호 1975. 05. 29 1975. 10. 15 3 5 275.3 4:30 1979. 6. 7 폐지
원주~삼척 1975. 11. 04 1975. 11. 15 156.2 3:30 1979. 6. 7 폐지
서울~삼척 1975. 11. 04 1975. 12. 10 2 2 198.2 4:50 1979. 6. 7 폐지
원주~강릉 1975. 11. 11 1975. 11. 11 118.6 3:00 1977. 12. 18 폐지
서울~속초 1977. 06. 15 1977. 08. 01 2 2 302.6 5:00 1979. 6. 7 폐지
원주~강릉 1975. 11. 11 1975. 11. 11 118.6 3:00 1977. 12. 18 폐지
서울~속초 1977. 06. 15 1977. 08. 01 2 2 302.6 5:00 1979. 6. 7 폐지
대구~진주 1977. 12. 10 1977. 12. 18 4 5 143.5 2:10 1979. 6. 7 폐지
대구~마산 1977. 12. 10 1977. 12. 18 4 7 105.8 1:40 1979. 6. 30 폐지
서울~대전* 1978. 07. 01 1978. 07. 06 10 22 153.2 2:00
서울~대구* 10 14 297.0 4:00
서울~부산* 19 15 441.4 5:40
대전~대구* 7 9 148.6 2:10 1982. 1. 23 폐지
대구~부산* 6 15 145.0 2:20
서울~광주* 12 14 320.3 4:20
서울~진주* 12 12 422.8 5:40
대전~광주* 6 11.5 185.1 3:00
대전~광주(일)* 6 7 185.1 3:30
부산~진주* 5 5 129.3 2:10 1983. 11. 1 폐지
광주~진주* 2 5 165.5 2:30
부산~광주 1978. 07. 01 1978. 07. 01 1979. 6. 17 폐지
서울~청주 1980. 07. 01 1978. 07. 01 11 31 128.5c 1:50
*코리아그레이하운드 인수 노선

연도별 운행노선 및 현황
구분 운행노선 수(개) 보유대수(대) 편도수(회) 수송인원(천 명)
1971 6 30 11,189 324
1972 5 39 49,318 1,228
1973 6 39 47,681 1,645
1974 6 39 54,937 2,034
1975 11 59 60,317 2,346
1976 11 63 78,092 3,041
1977 15 67 82,756 3,298
1978 24 175 134,441 6,836
1979 19 197 189,701 6,734
1980 19 203 234,311 7,666

연도별 고속버스 구입현황
구분 차종 구입대수(대) 단가(천원) 제작회사
1971 후소 905 30 11,506 아시아자동차
1972 후소 905 9 18,086 아시아자동차
1975 벤츠 0302 32 50,306 현대자동차
1976 시보레 2 15,790 지엠코리아
벤츠 0302 1 51,625 현대자동차
1977 후소 909 4 48,894 아시아자동차
1978 후소 909 17 57,970 아시아자동차
BU 110 8 26,087 새한자동차
PD 4104 80 합병 인수 미국GMC
GMK 5 합병 인수 지엠코리아
1979 BU 110 5 25,361 새한자동차
후소 909 22 58,671 아시아자동차
1980 후소 909 6 51,043 아시아자동차
RB 1635 29 30,947 현대자동차

각다시 찾아온 도약의 기회

- 코리아그레이하운드는 미국의 재개서열 27위인 그레이하운드코퍼레이션의 자회사 그레이하운드라인즈잉크가 국내에 설립한 한미 합작투자법인이다.

코리아그레이하운드의 인수·합병 추진

- 3월 11일에는 인수회사와 피인수 회사 소속의 노사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노사회의를 개최해 전원고용 승계와 동일한 고용조건에 대해 합의했다.

실질적인 합병작업과 조직개편

- 1978년 3월 14일 중앙고속 대표이사로 하여금 코리아그레이하운드의 대표이사를 겸직하도록 하고 실질적인 합병작업에 돌입했다.

전국 노선망 구축 및 노선 재정비

- 중앙고속은 코리아그레이 하운드의 인수·합병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맞았다.

안전조직의 확대와 한층 강화된 안전활동

- 1979년 안전조직을 확대,더욱 강화했다. 먼저 그해 3월 업무부 내 안전과를 안전관리부로 승격하고 ...

여객사업과 화물영업의 강화

- 화물영업도 강화했다. 화물운송업은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장거리 다량화물 수송이 대세였으며,주로 철도를 통해 운송됐다.

정비사업의 본격 전개

- 중앙고속 정비사업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1978년 코리아그레이하운드를 인수하면서였다.

업계 2위 대형고속버스 회사의 위상

- 중앙고속은 창립 첫해인 1971년 총자산은 4억 3,300만 원, 영업수입은 2억2,500만 원, 순이익은 100만 원을 기록했다.